아래 기록은 근래 겪었던 가장 고통스러웠던 날의 서술이다. 나중에라도 이때의 고통을 잊지말고 생활 방법을 개선해 나가기 위한 다짐으로써 포스팅 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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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도 5월 17일 금요일
저녁 즈음 일하는 중에 책상에서 일어나다가 갑작스레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았다. 전날 몸이나 풀까하고 실내에서 싸이클링을 3~40분정도 했었는데 혹시 몸이 너무 약해져서 그것때문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면 다리에서 어김없이 힘이 빠졌다. 처음에는 그냥 상황이 우스워 장난스레 웃으며 그냥 있었는데 1~2시간 후에 풀렸기에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갔다.
2013년도 5월 18일 토요일.
자고 일어나니 다시 그 증상이 시작되었는데 아예 일어날수가 없었고 다리는 마비되다시피 했다.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집 근처 정형외과로 향했다. 그곳 의사는 원인을 알수 없지만 일단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를 하자고 한다. 그런데 무슨 약인지도 말을 안해준다.
물리치료를 받고나도 전혀 차도가 없다. 걸어다닐수는 있지만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했고 자리에 앉는것도 무지막지하게 힘들었다. 이 날 역시 3~4시간 정도 지나자 마비가 풀려서 그냥 넘어갔다. 슬슬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다. 집안에 일이 생겨 백병원 응급실까지 갔지만 그쪽에서도 별다른 말은 듣지 못했다.
2013년도 5월 22일 수요일
허벅지를 높이 들어올리면 힘줄이 당기는 듯한 통증이 있었지만 페달링에는 지장이 없었고 날씨가 너무 마음에 들어 올해 2번째 이기대 라이딩을 실행했다. 왕복 30km 정도, 이기대 업힐을 포함해 거의 무정차로 달리고 집으로 복귀했다. 힘은 들었지만 다리에 문제가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고 갈증이 느껴져 콜라를 마신다. 이후 새벽 1시쯤 배가 고파져 사발면을 한그릇 먹고 잔다. 잠들기 직전 두 다리에 힘이 풀리는 느낌이 든다. 찜질을 하고나니 나아져 피곤하기도 해서 그대로 잠들었다.
2013년도 5월 23일 목요일
오전 7시경. 고통속에서 잠을 깼다. 한참 동안을 내가 왜 잠에서 깨어났는지 알수 없었다.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려고하니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다리는 완전히 마비되었고 허리는 움직이지만 옆구리나 가슴쪽 근육이 굳어 있는 느낌이 든다. 양 팔은 아직 움직이지만 어깨쪽에서 굳어가는 느낌이 든다. 손가락에서 쥐가 나는 느낌이 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잠이 덜깬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꿈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40분 가량 혼자서 일어나기 위해 별짓을 다해봤다. 그렇지만 이전과는 달리 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문득 더이상 이대로 방치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움직이는 오른손만으로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아버지께서 내 방으로 오셔서 날 일으켜 세울려고 하셨지만 그때는 이미 내 온 몸이 마비상태인지라 엄청나게 무거워져 있었기 때문에 힘겨워 하신다. 운동을 반년 정도 쉬었기 때문에 그새 살이 붙어 현재 몸무게는 67~68kg 정도. 운동을 즐겨할때의 60kg에서 한참 살이 찐것이니 무거울만도 하다.
어찌어찌 고생끝에 쇼파에 날 앉히셨다. 이전처럼 다리만 마비되는게 아니라 온몸이 마비되고 있다는 설명을 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입이 바짝 말라버렸기 때문에 말을 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갑작스레 구토 증상이 몰려 온다. 뱃속에 든것도 없이 위액이 섞인 멀건 물만 수차례 토했지만 이마저도 쉽지가 않다. 가슴쪽이 마비되어 잘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상 직후인지라 소변을 보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목 아래쪽의 모든 근육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지 않았다. 동생에게 전화를 해 불러왔지만 뾰죽한 수가 없었던것 같다. 이때쯤 나는 정신이 희미해져 있었다. 구토 증상이 너무 심했고 온몸이 움직일수 없어서인지 너무나도 큰 힘이 소모되고 있었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구급차 안인듯 하다. 구급대원들이 날 실어가고 있다고 한다. 또다시 구토가 몰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가락 하나 까닥할수 없다. 구급 대원을 다리에 머리를 기대고 비닐봉투에 구토를 계속한다. 너무 괴롭다. 몸이 아프다. 입안은 사포질을 해놓은것처럼 까끌거리고 입술을 떼는것조차 힘들다. 오히려 구토로 인해 입안에 물기가 생기는게 반가울 정도다.
그렇게 소란스러움이 지나고 더이상 버티기 힘들어질 무렵 몸을 옮기는 느낌이 든다. 인제대학 해운대 백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것이다. 인턴으로 보이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차례대로 다가와 이것저것 질문을 한다. 난 말을 할 기력도 없고 계속해서 구토 및 온몸의 고통으로 인해 아버지께서 설명하셨다. 이윽코 허리 수술을 하셔서 거동이 힘드신 어머니를 동생이 모시고 왔다.
응급실에서 누워있으니 다리와 허리가 상상도 못할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른 지금 생각컨데 다시는 다리를 못움직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심과 오랜 시간 굳어있던 다리의 합작이었으리라. 아버지께서 이리저리 다리를 옮겨주시지만 너무나 고통스럽다. 내 평생 겪어본 그 어떤 고통보다 월등히 공포스럽고 아프고 힘들었다.
1시간이 넘어가지만 기본적인 IV 삽입외에는 약 조차 주지 않는다. 보다못한 어머니께서 보호대를 차고 있는 아픈 허리를 이끌고 담당의사에게 찾아가셨단다.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데 왜 빨리 조치를 안해주냐고. 그제서야 어디선가 호출을 받은 듯한 담당의가 찾아온다. 교수라고 한다. 다른 환자들이 많아 바빴다고 하는듯 한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여러 증상을 조합한 끝에 갑상선 항진이 의심된다고 하며 피검사 결과 칼륨 수치가 극단적으로 낮고 전해질도 문제가 많다고 했다. 일반인이 3.5 정도 나와야하는 수치가 1.x 대로 떨어졌다는 설명을 들은것 같다. 이때 나는 거의 반쯤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는데 몸을 움직일수 없다는 그 감각이 나를 점점 미쳐가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고통은 덤이다.
칼륨 수치를 올려주는 약물을 흔히들 링거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투입한다. 그외에도 뭔가 약을 잔뜩 집어 넣는것 같았지만 나는 알수가 없다. 갑상선의 치료는 나중이라고 한다. 칼륨 수치를 먼저 올려서 현재 증상을 가라앉히고 나중에 갑상선 치료를 하자고 한다. 이것도 잘 기억은 안난다. 아마도 그런 의미였으리라.
이때 어머니는 허리 통증이 심해지셔서 어쩔수없이 집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 혼자 계셨는데 입원 수속과정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 느낌상으로는 5~10분 정도였지만 내게는 100년같은 고통의 순간이었다. 소란스런 응급실안에서는 아무도 내 고통을 인지하는 사람이 없었고 고통스러운 다리와 몸의 자세를 바꿔줄 사람이 없었다. 간호사를 소리쳐 부르고 싶었으나 목이 너무 말라 입을 뗄수 없었다. 잠깐 지나가던 다른 환자분이 내가 고통스러워하는것을 보다못해 자신도 링거를 투입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침대 옆으로 다가와 다리를 덜 아픈 방향으로 옮겨주었다. 어찌나 고맙던지..
퇴원하는 날 찍어놓은 태그. ㅎㅎ 고작 며칠이지만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링거 한병을 다 맞고 어느새 오후 4시가 넘어 5시 즈음음되었었는데 마비를 발견한것이 오전 7시였으니 나는 이미 10시간 넘게 마비 상태로 물 몇 모금 마신채 고통속에서 떨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약을 쓴것인지 구토 증상은 조금 가라앉았다. 나중에 들어서 안것이지만 뭔가를 잘못 먹은것이 아니라 몸이 마비되면서 몸속 장기들도 그 기능을 잃어갔는데 그로 인해 구토가 유발되었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밥을 사오셨는데 이것을 먹기 위한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겨우 구토만 멈춘 상태였고 몸의 마비는 여전했다. 게다가 무슨 링거액인지 왼쪽 팔이 떨어져나갈만큼 아프다. 간호사를 불렀지만 정상이란다. 아픈 약이라고.. 억지로 참으면서 밥을 먹어보려고 했지만 자세가 문제다. 허리가 너무 아파 좌,우로 몸을 돌려 두고 있었는데 밥을 먹기에는 어려운 자세였다. 베드를 세워 겨우 몸을 지탱시켰는데 꿈쩍하지 않는 내 몸을 세우기 위해 아버지께서 엄청난 노력을 하셨다. 사람의 몸이 굳으면 그 본연의 무게보다 훨씬 무겁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겨우 한숟가락을 받아 먹는데 잘 삼켜지지가 않는다. 목까지 마비가 와서 식도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듯 하다. 결국 두숟가락만에 사레가 걸렸는데 기침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식도가 잘 안움직이고 가슴 근육도 잘 안움직인 결과다. 이때 나는 물에 빠져 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질식사....라는게 농담처럼 여겨지지 않는것이다. 결국 밥먹기를 포기한다.
칼륨 수치를 계속해서 조사하기 위해 혈액검사만 3번 이상 한듯 하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내 몸의 수치는 2.x 대라고 한다. 그나마도 빠르게 올라온 수치란다.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아픈 링거액을 2병째인지 3병째인지를 달고 10분 정도가 지나자 그제서야 발가락이 움직인다. 그때의 시간이 이미 해가 진 이후였으니 아마 9~10시였으리라. 너무 기쁜 마음에 발에 힘을 주고 들어올릴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는다. 그래도 약간씩이나마 움직인다. 마비가 서서히 풀리는 느낌이 들고 30분쯤 후에는 마비 증상이 사라진다. 물론 아직 걷기는 힘들었지만 최소한 침대위에서 그 고통스럽던 시간은 끝난 것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려고 한다. 내 평생 이렇게 고통스러운 날이 있었던가. 모르겠다.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
이때 너무 배가 고파서 마침 다시 병원으로 달려온 동생이 밥을 사와 같이 먹게 된다. 그 맛이란..
새벽이 다되어서야 나는 병실로 입실하게 된다. 휠체어에 태워져서.
5인 병실이었지만 새로 지어진 병원답게 깔끔한것이 마음이 안정된다. 아직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화장실가는것이 걱정인데 병실내에 있어서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환복하고 침대에 내동댕이 쳐지다시피한뒤 그대로 잠들려고 했다. 하지만 하루종일 고생한 탓인지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았고 간호사들이 수시로 혈압을 재고 피검사용 혈액을 채취한다고 비몽사몽으로 날이 밝을때까지 지냈다.
아침이 되고 다시 링거액을 바꾸고 전날 새벽의 혈액 검사 결과를 받았는데 이제 수치상으로는 정상에 가깝단다. 그래서인지 몸의 운신도 괜찮았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아침 식사를 하고 있으니 내가 어제 겪었던 일이 과연 진짜였는가 싶은 마음까지 든다.
회진시간이 되자 예의 교수님이 내게 와 상황을 설명해주신다. 갑상선 기능 항진이라는 병이며 갑상선의 기능이 너무 과하게 작용해 내 몸에 이상이 생기는데 마비가 오는 경우는 드물단다. 그런데 수치가 너무 심하게 떨어져 그런 마비 증상이 온것이라고 하며 그동안 내가 별 신경 안쓰고 당분이 부족해서, 배가 고파서 그런것이라 여겼던 손떨림이나 과도한 배고픔 증상 등등이 모두 갑상선의 이상으로 인한것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어쨌든 다행이라고 한다. 병을 알았으니 치료를 하면 될것이라며 1년 조금 넘게 약물 치료를 해보자고 하신다. 저녁이 되어 또다시 혈액 검사를 했는데 이제 완전히 회복된듯 하단다. 하지만 아직 조절해야하니 하루 더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토요일까지 입원하기로 한다. 새로운 약물이 믹스된 링거액을 토요일까지 주구장창 팔에 꼽게 된다.
이후는 평온했다. 나는 오랜만에 하루종일 하는 일 없이 뒹굴거렸고 병원 밥은 여전히 맛있다고 하긴 그랬지만 옛날에 비해서는 훨씬 나아진 맛을 보여주어 맛있게 먹으며 지냈다.
퇴원하고 난 첫날인 어제 저녁즈음 다시 다리에 마비가 오는듯 해서 잠시 긴장했지만 자고 일어나니 아무런 증상이 없어서 한숨 돌렸다. 이제 여러가지 규칙들을 지키면서 관리해야하는데 초심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글로써 남겨둔다. 제발 완치되기를 바란다. 재발될 확률 50% 라고 하지만 나는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