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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로맨스 클럽? 핑크빛 가득할거 같은 로맨스 장르에 블랙이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합성된 황금가지의 서브 브랜드, 블랙 로맨스 클럽은 기존의 황금가지에서 발매되고 있는 추리, SF 같은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작품들을 모아 선보이고 있다. 일단 로맨스 가득한 내용인건 맞는데 글의 기반이 되는 장르적 클리쉐들이 다양하다. 지금 소개하는 모리 아키마로의 신작 "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 같은 작품은 추리 소설에 속하고 그외에도 SF, 판타지 심지어는 호러까지도 취급하고 있다고. 구성 작품들도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엄선하려고 노력하는듯 하니 관심있는 독자라면 슬쩍 살펴봄직 하다. |
작가인 모리 아카마로는 일본 명문 대학으로 유명한 와세다 대학의 문학부 박사 출신이라는 어디를 가나 학력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보자면 꽤 눈이 가는 이력을 가진이다. 엘리트 문학 코스를 밟아 정석대로 작가가 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신진(?) 작가인데 뜻밖에 글을 읽어보면 정석대로 커온 반듯한 맛과는 거리가 먼 유쾌함이 느껴 져 약간은 당혹스러움이 생긴다.
본 작 "이름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는 5편의 단편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어놓았는데 그렇다고 시간의 순서가 엉망인 건 아니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핑크빛 술주정...아니 로맨스를 담고 있다.
알쏭달쏭한 언어유희를 줄곧 써대는 니시오 이신같은 작가의 글과는 다르게 전반적으로 굉장히 읽기 쉬운 책에 속한다. 글의 수준이 높네! 낮네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똑같은 언어유희를 도입하더라도 이쪽은 훨씬 간결하면서 명쾌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책 한 권을 독파하는 데 걸린 시간은 2~3시간 남짓. 딴짓하지 않고 읽으면 좀 더 빨리 읽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읽어나가다 보면 최근 몇 년간 유행하고 있는 일본의 라이트노벨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이러한 부분은 마치 애니메이션 속에서나 봄 직한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과 묘사, 그리고 전혀 그렇지 않으면서도 몰래몰래 과장해놓은 상황 설정과 내용 전개에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 한다. 특히나 책의 화자가 되는 주인공 조코와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미키지마는 저패니메이션을 자주 봤다면 굉장히 친숙한 캐릭터로 여겨질 만큼 여러 클리쉐들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짝 거짓말 좀 보태서 삽화 몇 개 추가해서 라노벨 신간!'이라고 출판해도 크게 어색함이 없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 그렇다고 내용까지 양판소의 그것과 닮지는 않았으니 오해는 하지 말자. 어쨌거나 술술 읽힌다는 뜻이다.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은 전혀 추리 소설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추리 소설의 여러 장치를 달달한 청춘 로맨스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놓았기 때문인데, 그 묘사가 꽤 재미있다. 전혀 그렇지 않은 상황과 다른 상황을 도치시켜보면 훌륭한 추리 장르의 상황이 된다는 점이 흥미로운 부분이다. 작품 속에서는 그 흔한 살인 사건 하나 발생하지 않지만 분명히 이 작품 속에는 밀실 사건이나 의문의 죽음, 연기처럼 사라진 살인범 등이 다채롭게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다만 트릭의 질은 그다지 높지 않다. 미스터리 장르 좀 씹어봤...아니 독파해온 독자들이라면 5편의 단편 중에서 최소 3편 이상은 초반부터 눈치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도 글을 풀어가는 방식이 흥미로우므로 쉽게 손에서 놓이지는 않는다. 어쩐지 시리즈로 좀 더 발매할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번역의 질에 대해서 조금 언급하자면 요즘 황금가지 쪽 번역판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굳이 억지 한국식 표현으로 고치지 않고 원어의 뉘앙스를 그대로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독음을 그대로 쓸 때도 있고, 주석을 이용해 부연 설명하는 식이다. 위트 포인트가 많은 작품인 만큼 굳이 어설프게 한국에서 유행하는 드라마 대사 같은걸 차용하는 만행보다는 이쪽이 낫다고 보인다. 다만 조금 과한 부분도 없잖아 있다. 평소라면 지적할 일본어식 표현이 그대로 등장하지만, 일본어 소설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아니면 무리를 해서라도 한국식으로 바꿔야 했을지는 본인으로서는 쉽게 판단이 서질 않는다.
한가지 의아한 것은, 역자의 프로필인데 영어와 스웨덴 어를 전공했다고만 표기되어 있다. 물론 일본어에 능통하니 일본 소설을 번역했겠지만, 책에 표기된 프로필만 보자면 조금 뜬금없는 느낌이랄까. 출판사 측에서는 조금 더 신경 써서 역자의 프로필을 표기하는 게 신뢰도 상승을 위한 지름길이 아닐까 한다. 어쨌거나 인간의 편견 덩어리라고 생각하는 1인이다. 실컷 재미나게 읽어놓고선 이런 부분을 발견하면 뭔가 어색한 게 있었나 하고 의심하게 되니까.
책 자체의 품질은 모난 곳 없이 디자인되어 있고, 한 손에 들고 볼 수 있는 가벼운 무게와 크기가 마음에 든다. 화려한 띠지 디자인이 멋져서 버리고 싶지 않은 느낌이 드는 건 장점이자 단점. 인쇄된 폰트가 조금 작게 느껴지는 건 요즘 들어 E-ink를 이용한 전자책을 자주 이용해서 그런듯하다. 그런데 이 책 판형이 조금 애매하다. 대충 자로 지어보니 133mm x 200mm 정도인데, 기존 다른 판본들과 높이가 잘 맞지 않아서 책장에 꽂아두기가 모호하다 하면 너무 편집증적인가? 아마 블랙 로맨스 클럽 책들은 다 이 판형이지 싶은데 결국은 여러 개 사서 모아봐야지 하는 생각이 슬쩍 고개를 내미는 느낌이다.
곤도 후미에의 새크리파이스 이후로 오랜만에 읽어본 일본 소설이라 나름대로 기대를 하고 읽었고 깊이감은 모자랐지만 맛있는 별식을 후루룩 흡입한 것 같은 만족감은 남았다. 이만하면 기대치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준 듯 하다.
달콤씁쓸한 청춘 로맨스 소설이면서도 추리 장르를 교묘하게 분해, 재구성해 보편적인 재미를 겸비하고 있는 작품인 만큼 블랙 로맨스 클럽의 레이블이 그럴듯하게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말을 끝으로 서평을 맺음 한다.
* 본 서평에 사용된 책은 '황금가지'에서 실시한 서평단 이벤트를 통해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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