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가 없는 글은 재미가 없다."
다양한 장르의 글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소모되고 있는 현시대에서도 이러한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선형적인 구조로 단순미를 뽐내며 진행되는 웹소설이라 할지라도 요소요소에 미스터리(흔히 말하는 떡밥일지라도)가 가미되어 독자들이 추리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글들은 읽고 사고하는 재미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한 미스터리 요소를 극대화하고 주제로써 파고든 글을 흔히 정통 추리 소설이라 부르지만 요즘 우리나라에서 흥하고 있는 장르는 아닌듯 하다. SF와 마찬가지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수의 명탐정 캐릭터를 탄생시켜 온 이 장르는, 지금도 누구나 셜록 홈즈라는 이름은 알지만, 바스커빌 가의 개라든지, 그 유명한 주홍색 연구 같은 작품의 완역본을 읽어본 요즘 세대가 얼마나 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사실 본인도 학창 시절 이후로 추리 소설에 몰두한 적이 그다지 없는 듯하니, 장르적 인기를 논하자면 지금, 이 순간을 기준으로 예전과 같은 위상은 아닐 거라고 짐작된다.
지금은 웹소설의 시대다. 흡사 PC 통신 시절, 14400bps 모뎀의 잔인한 비프음 너머로 과수원 사장님이 한땀 한땀 두드려 가며 DR, FW 같은 작품들을 한 편씩 감질나게 공개하던 때가 다시 도래한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접근이 쉬워졌고, 주제가 다양해졌으며 글의 양식도 다양해졌다. 글의 퀄리티는 제쳐두더라도 다양성이라는 점에서는 굉장히 폭이 넓어진 시대가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웹소설 장르를 채용한 추리 소설은 의외였는데, 정통 중의 정통이라 할만한, 다시 말해 이미 장르를 규정짓는 요소들이 확고하게 정립된 추리 소설과 이와는 전혀 반대로 정해진 요소 없이 다양한 형태를 가지는 웹소설은 합쳐 지기에는 이질감이 심하다고 나도 모르게 규정 짓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본 작품은 책 빙의라는 형식을 빌려 주인공이 이미 완독해서 결말을 알고 있는 추리 소설 속으로 들어가 활약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는데, 이러한 제4의 벽 너머 존재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전지적 활약을 하는 장르는 웹소설 쪽에서는 다양하게 변주되어 오고 있는 요소인 만큼 사실상 새로움이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상 장르가 정통 추리 소설이라면 과연 작가가 어떻게 풀어내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것이 인지상정. 판타지 장르 같은 웹소설에서는 미지의 힘이나 신의 개입 같은 초자연적 현상으로 간단하게 해결될 만한 일들도 추리 소설에서는 논리가 구축되고 리얼리티가 개입되어야 하는데 과연 독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작가의 역량이 이를 뒷받침할 수 있을까 하는 게 책을 읽기 전에 들었던 솔직한 의문이다.
간략 시놉시스 :
다수의 사용인이 있는 저택에서 의문의 연쇄 살인이 시작되고 주인공이 희생자 중 한 명으로 빙의되면서 작가라는 이름의 신으로부터 너무 통속적이라 인기가 없는 이 글을 의외성을 가질 수 있게 바꿔 달라면서 뻔한 전개가 시작되는 듯 했으나.. 시작부터 내가 알고 있는 범인이 죽었다? 대체 이 소설은 어떻게 굴러갈것인가? -----
연쇄 살인은 추리 소설에서 매우 비중 있게 다뤄지는 요소이며 언제봐도 재미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살인범마다 자신만의 규칙을 가지고 자행되는 이 반인륜적인 행위를 놓고, 탐정이나 그에 준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 치열하게 두뇌 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단순히 독자가 관람객의 위치에 만족한 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충분한 단서를 제공해 주기에 실제로는 작가와 독자의 두뇌 싸움이 되는 추리 소설 장르의 테마로써 훌륭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본 작품은 퓨전 장르임에도 이러한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요소들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 단서가 여기저기 널려있고 이는 독자들도 동일하게 알 수 있지만 교묘하고 다양한 트릭들이 이를 가리고 있다.
또한 작가는 웹소설(정확하게는 서브 장르인 책빙의) 장르를 소설 속에서 영리하게 장치적 요소로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배경적 요소로만 사용하는 줄 알았더니 추리 소설을 읽다 보면 종종 드는 의문들에 대해서 작가 나름의 답을 제시하며 모순점들을 지적하고 이를 위트 있게 디스하고 있는데 작가의 추리소설 사랑이 엿보이는 듯하다. 무능하다 못해 멍청하게 보이는 경찰을 두고 소설의 진행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한탄한다든지, 소설 속 주인공인 명탐정이 해결하는 과정에서 '주인공 보정'을 통해 아무 이유 없이 극적으로 답을 얻어내는 부분들을 납득하는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겠다.
이 부분이 꽤 영리한 지점인데, 얼핏 이 오래된 전통 장르가 가지는 태생적 단점을 지적하는 블랙 코미디 같은 코드지만, 따지고 보면 그러한 부분을 뛰어넘지 못하는 작가의 역량을 감추는 역할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뻔하고 어이없게 넘어간다고? 라는 의문이 드는 부분에서는 어김없이 전지적 능력을 통해서 '그래, 이건 웹소설이니까' 또는 '전형적인 추리 소설의 요건'이니까 라는 말로 재치 있게 넘어가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작가 고유의 무엇인가로 뛰어넘으려 하지 않고 차용해 온 전지적 요소들을 통해 은근슬쩍 넘어가는 모습이 꽤 구렁이 같아 너털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영리하다 영리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꼭 추리에 몰두하는 과정이나 결과를 맞혔을 때의 희열만이 그 이유는 아닐 것이다. 작가가 완성해 낸 놀랍도록 기발한 범행 구조와 이를 파헤치는 과정의 유니크함 같은 이야기 그 자체를 즐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평범함을 넘어섰는지 묻는다면 글쎄라고 답 할 수밖에 없을 듯 하다. 작품의 구성은 꽤 올드해서 흡사 애거사 크리스티 작품 같은 옛날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도 살짝 든다. 물론 여기저기 꼬아두고 비틀어서 군데군데 흥미로움을 끼워두고는 있다.
분량 조절에도 조금 의문이 든다. 굳이 1, 2권으로 나눠야 했었나 싶다. 내용 전개 과정을 조금 다듬어서 단권 분량으로 조절했으면 더욱더 템포가 빠르고 읽기 편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 주변 요건 다 무시한 독자로써의 얄팍한 소감이자 바람이다.
추리를 풀어나가는 요소로 작가는 현실 주인공과 책 속 주인공 탐정과의 대화, 그리고 서술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1권에서는 그럭저럭 버틸만했지만 2권에서는 요즘 말하는 TMI가 너무 심해져서 지루해지는 구간들이 많은 편이다. 웹 소설식 문체 -문장이 짧고, 별다른 기교 없이 직접적인 묘사가 주를 이루는 - 를 대거 채용하고 있어서 읽기가 쉽다는 점은 요즘 시대에 장점이라 할만하다.
등장하는 캐릭터가 꽤 되는데 주축이 되는 명탐정이나 비중이 높은 캐릭터들이 입체적이지 않고 이렇다 할 특색 없이 너무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것도 아쉬운 요소다. 다른 캐릭터들이야 추리 소설 장르적 규칙을 지키고자 그리 디자인한 느낌은 있지만 고유의 캐릭터가 가장 강조되어야 할 명탐정은 몇몇 클리쉐를 끌어오기만 했을 뿐 밋밋하고 재미없는 그저 잘생긴 탐정이라는 식상한 캐릭터다. 물론 이는 빙의된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라고는 생각되지만 그래도 추리소설의 꽃은 개성 강한 탐정이라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빙의된 주인공이 개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라 아쉬움이 남는다.
오랜만에 기대하고 독파한 추리 소설이라 말미에 아쉬움을 담아 조금 투덜거려 봤는데 전반적으로 추리소설을 잘 이해하고 좋아하는 작가가 쓴 글이라는 장점이 뚜렷하고, 오랜만에 접하는 추리 소설이라 관심 있는 독자라면 덤벼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추리 소설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면 이 책을 통해 입문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닐 듯하다. 작가가 영리하게 클래식 추리 소설 장르의 클리쉐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기에 이해하기 좋은 편이라는 말을 끝으로 글을 맺음을 한다.
** 본 글은 브릿G 서평 이벤트를 통해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fin.
ps : I hate spell che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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