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마음에 드는 하나를 접하고 나면 비슷한 다른 무언가를 찾게 되는 행위를 내 마음의 항상성이라 해야 할지 취향의 지속성이라 불러야 할지 아리송하지만 어쨌거나 종종 그런 일이 생기곤 한다. 무슨 헛소리냐면 근래에 디스토피아 장르를 접했더니 계속 디스토피아 장르의 글에 구미가 당긴다는 거다.
해당 글 보러가기 (아래 링크 참고)
그래서 이번에 소개할 글은 – 벌레 공장 – 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하늘을 볼 수 없는 땅속에서만 살아가는 암울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배경으로 땅속에서 활동하는 여러 거대 벌레를 퇴치하는 퇴치꾼 소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설정이 매력적인데, 깊은 땅속에서 생활하기 위해 과거 인류가 남겨둔 발전소라는 거대 설비를 통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 최저한의 전기를 공급받고 있고, 당연하게도 발전소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무대로 활용된다. 각각의 발전소 도시를 이어주는 거대한 터널이라든지, 핵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 돌연변이 벌레들과 아직도 남아있는 구시대의 유물 같은 것들은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주는 아교 역할을 하고 있다.
설정 놀음에 매몰되는 작가들을 많이 봐왔지만, 그럼에 어느 정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설정은 이야기의 흐름을 끊거나 설득력을 상실하게 만들기 때문에 과하지 않게 적당히 상상력에 맡길 부분은 맡기고 의문을 자아내는 설정은 긍정적으로 여겨진다. 본 작품은 아슬아슬하게 균형점에 도달했다고 보이는데 작가가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에서 조금씩 드러내기 위함인지 약간 아껴두는 느낌은 든다.
제목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내용을 다 읽어봐도 크게 와닿는 요소가 없는 제목인지라 차라리 벌레퇴치꾼 이야기라든지 벌레 퇴치꾼 소렌…같은 직관적인 제목이 더 낫지 않나 싶다. 유추해보자면 거대 벌레가 태어날수 밖에 없는 지하 세계 그 자체를 뜻하는듯한데 모호할 따름이다.
이 작품은 거대 벌레를 퇴치하는 행위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낸 소년이 성장해 퇴치꾼이 되어 겪게 되는 다양한 사건들을 그려내고 있는데 극의 분위기가 흡사 매드맥스를 떠올릴 만큼 지저분하고 거칠고 혐오스럽지만, 그 속에는 정의가 있고, 우정이 있고 모험과 스릴이 있다.
특히 극의 초반, 아직 작가가 뭔가 작품에 대한 명확한 선을 잡지 못하고 조금 허우적거리는 느낌이 들면서도 소년이 거대 벌레를 통해 지루하고 하찮은 자기 삶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내는 장면은 앞으로 주인공이 이뤄나갈 행동들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강한 설득력을 보여주어서 인상적이었다. 그저 “나는 세상을 정복하겠다 고로 정복한다.” 같은 평면적 사고가 아니라 유년기 시절의 여러 굴곡과 본인의 심리 상태가 어우러져 결과로 이어지는 장면을 통해 작가가 만들어 낸 캐릭터에 강한 힘을 실어준다.
이야기는 시간의 순서대로 흘러가지만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뤄져 있어서 챕터별로 따로 읽어도 크게 무리는 없다고 생각된다. 크게 베고니아라는 발전소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과 밤부 라는 거대 승강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고 그 중간의 이동 경로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들로 이뤄져 있다. 아마 작가가 장편 연재물로 기획했다가 밤부 편 이후로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현재 리부트라는 이름으로 동일 주제로 새롭게 업로드 되는 거로 안다. 살짝 덜 다듬어진 느낌의 베고니아 편 이후에 등장하는 밤부 편은 작가의 노력이 많이 들어간 듯 보이는데 흥미진진한 내용과 과격한 폭력 장면들로 에피소드 통틀어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이후로 계속해서 내용이 이어져서 비슷한 분량의 에피소드가 1~2개만 더 있었어도 좀 더 완결성이 있었을 텐데 비록 에피소드는 완전하게 종결되었지만 이제 막 제대로 모험이 시작되는 느낌에서 종결시켜 버렸다는 점이 매우 아쉬움을 남긴다.
덕분에 리부트에서 이야기가 이어지길 기대했는데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소개 글을 보니 주인공의 어린 시절 내용으로 보이며 그마저도 비슷한 분량에서 종결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하니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추락과 비행은 방향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같은 행위이며, 그 어느 쪽도 바라지 않는다면 제 자리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 정체되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올라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무언가를 덜어내야 하는 법이네.”
우리네 삶에서 한 번쯤은 느껴봄 직한 진실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 작품 속에서 가장 와닿는 문구 두 문장을 가져와 봤다.
전반적으로 작품은 초반의 애매모호함과 설익은듯한 느낌을 지나고 나면 흥미로운 모험극 형태를 띠며 약간의 브로맨스도 가미해 아슬아슬하게 진행된다. 초중반까지 이어지던 디스토피아 분위기가 후반부에서는 활극에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꽤 희석된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작가의 필력에 힘입어 읽는 내내 흥미를 잃지 않고 마지막까지 달려갈 수 있는 작품이었다. 위에서 언급했던 추가 에피소드의 결여, 덕분에 작품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느낌만 제외하면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험 활극을 맛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해 봄직 하다는 말을 끝으로 맺음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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