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bby Life/자전거 * Riding Story & Gears

8월의 노스텔지어 Nostalgia


8월 한여름의 한낮동안 작열하는 태양의 세례는 인내심 많은 대지가 이글거리는 그의 권능이 사라진 저녁 무렵에도 그 열기만은 지독시리 유지되곤 하는 흡사 저주와 같은것이리라. 무자비한 밤의 여왕인 달이 이미 지척에 이르렀지만 열기의 주박 위를 달리는 나를 구제하기엔 그녀와 나의 거리만큼이나 망막함이 있다.


숨을 고르며 숙여있던 머리를 힘겹게 들어 올려 앞을 바라본다. 집에서 이곳 이기대 입구까지의 11km 거리를 가능한한 다양한 페이스로 달려온것이다. 그 과정은 언제나와 동일하다. 광인(狂人)들의 집단 탈주극을 연상시키는 사람과 자동차들의 비상식적인 박람회가 상시 열리고 있는 광안리 해변가를 요령 좋게 통과해 온것이다. 차와 사람 사이를 지나다보면 나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서고 맥박이 펄덕이기 마련이지만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공백과 공백을 이어주는 패스(線)를 느리게 또는 빠르게 혹은 멈추어가며 지나오고나면 그 자체만으로도 이윽고 다가올 메인디쉬를 기대하게 하는 에피타이저가 된다. 세심한 조절은 힘들지만 근육에 주어지는 다양한 자극이 곧 즐거움이라는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눈앞에 드러나는 이기대 성당으로 오르는 가파른 고개길을 바라보며 엉뚱하게도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 시작한다. 이곳에서부터 전심전력을 다해야할것인데 온몸의 이완이 완료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분명 조금전까지 완료했다고 생각했던 사전작업에 불만이 남아버린것은 이제와서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 주변머리없는 내 성격으로는 이 이상은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후회의 길이는 입구에서 오르막까지 진입하는 십여미터에 불과하다. 0도의 경사도가 가파르게 변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내 머릿속의 잡다함은 자취를 감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고민도 불평도 짜증도 날려버리고 오직 내 몸을 원할하고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는것은 오직 반복으로 축적되기에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한번 체득(體得)하고 난 뒤부터는 오직 즐거움일 따름이다.

스템(STEM)에 거치해놓은 스마트폰에서 Ella Fitzgerald 의 Too darn hot 노래가 내 고막을 비집고 흘러들어와서는 이윽고 아드레날린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길들어져 있는 몸이 반응하는 시간은 의외로 짧다. 앞쪽의 크랭크는 일찌감치 이너(Inner)로 위치를 정해놓고 차분히 역할을 다하고 있지만 스프라켓 위를 가로지르고 있는 체인은 아직 그 정당한 위치를 고심하며 까불까불거리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이기대의 모든 코스를 통틀어서 가장 경사도가 높은 곳이다. 어설픈 고민이나 배짱은 그다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소태 씹는 기분을 느끼며 톱에서 한칸의 여유만을 애써 고집하는 정도로 리어 드레일러(Rear derailleur) 위치를 타협한다. 내년에는 조금 더 빠른 기어비율을 쓸수 있기를 기원하는 자기기만형 바램은 이미 저 언덕 아래로 맹렬히 굴러 떨어져가고 있다.
 


이기대 성당 앞 도로에 얄밉게 불법주차하고 있는 차량들의 행렬은 봐도 봐도 화가 나지만 딱 거기서부터 시트(Seat)에서 엉덩이를 어거지로 끌어올려 좌우로 골반을 리드미컬하게 움직여야 하기에 부동심을 유지하며 스쳐지나간다. 마르코 판타니 (Marco Pantani) 나 에디 먹스 (Eddy Merckx)의 그것을 연상해보지만 어디까지나 마음속으로만이다. 누군가 알아채면 비웃음사기 딱 알맞은 실력으로는 단지 힘내어 한쌍의 페달을 해머링 하기 위한 동력일 뿐이다. 집중해야 한다. 자전거로 이기대를 올랐던 첫해에 이곳에서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단련이 덜된 일반인의 무릎과 다리 근육으로 방심해서 어설프게 페달링했다간 근육염좌나 무릎인대손상 같은 귀찮은 부상을 얻기 쉽상이다. 가장 많은 체력을 소모함과 동시에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해 자전거를 컨트롤해 나간다. 사실 이기대의 3km가 채 안되는 짧은 코스에서 가장 신경 쓸 곳이 이곳말곤 딱히 없기 때문이다. 

코와 입으로 들숨날숨을 번갈아 흡기하던것이 언제부터인지 벌어져 다물어질줄 모르는 입으로만 힘겹게 헐떡이고 있다. 빌어먹을 비염에게 축배를! 그리고 본인과 똑같은 고통을 당하는 다른 라이더들에게도 한잔 더! 져지 상의는 땀이 흘러내림과 증발이 거의 동시에 이뤄지는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갑갑해진다. 져지가 아닌 면티셔츠였다면 이기심의 발현으로 타인의 안구 건강에 아랑곳하지 않고 웃옷을 벗어 재꼈을것이다. 아직도 대지의 저주는 내 얼굴쪽으로 복사열(輻射熱)을 가열차게 뿜어냄으로써 건재함을 시위하고 있다. 먼지를 덜 마시기 위해 얼굴의 하관쪽을 덮고 있던 스포츠 버프는 이미 벗어던진지 오래이기 때문에 고스란히 열기를 흡수하는 것이다. 그뿐이면 좋으련만 텅빈 등쪽으로도 직사광선이 아닌 열기를 머금은 대기의 덩어리들이 침습해오고 있으니 진퇴양란(進退兩難)이 아닐수 없다. [전후좌우동시다발지속발랄] 하는 열기의 바다속을 헤매이는 느낌은 얼마가지 않아 드랍바를 잡고 있는 나의 팔을 인정상정없이 잡아당기고 클릿 페달 위에 매달려 있는 두 다리에 보이지 않는 무게추를 달아놓는다. 하지만 어디 이곳의 이 상황이 한두번이던가? 극복하는 방법을 알고 있고 스스로의 체력을 믿고 있는 나는 속도계에 표시되는 섭씨 30도 라는 믿을수 없는 저녁 온도에도 더이상 아랑곳하지 않는다. 

시팅과 댄싱을 번갈아가며 깔딱고개의 정점에 다다르기 바로 직전의 이 순간에 드는 생각은 매번 똑같다. '예전 첫 도전에서 실패했던 그 곳을 나는 이렇게 수월하게 올랐다! 나는 한걸음 더 전진했다!' 라는 스스로를 향한 격려이자 독려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만은 오르고 또 올라도 항시 같은 생각이 든다. 뭐 어떠랴.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비밀스런 칭찬에 쑥스러워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재빨리 드랍바에서 손을 놓고 뒤를 힐끔 - 차량이 오지 않는걸 확인하곤 곧바로 헐떡이는 목구멍으로 물 한모금을 어거지로 부어넣는다. 두 모금이라는 사치는 부릴수가 없다. 사레 걸려 호되게 당해본 뒤의 경험이라곤 말못하지만.

물통을 케이지(Cage)에 넣고 있노라면 어느새 짧은 다운힐이 시작된다. 호흡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어차피 이곳에서 회복할 마음은 없으니 달디단 공기를 갈구하는 두쪽의 폐에서 애써 신경을 두 손으로 돌려서 기어변속을 행한다. 풀아우터! (Full Outer) 이 짧은 내리막에서 최대한 탄력을 받아 이어지는 2~3백미터 평지를 순항하고 싶은 욕심인것이다. 그래야 그 거리에서 페달링에 쓰는 힘을 최소화하여 호흡을 되찾아올수 있는것이다. 4~50km에 육박하는 속력을 손쉽게 얻어내어 달리면 그에 비례해 발생하는 공기의 흐름이 짧은 시간이나마 온 몸을 식혀준다. 호흡을 정비하면서 몸도 식히는 일석이조라는 말이다. 

오른쪽으로 꺾이는 코너에 접어들면서 다시 크랭크를 겸손하게 이너로 향하게 하곤 뒷드레일러는 중간 즈음으로 향한다. 이후로 이어지는 힐클라임들은 초입의 그것과는 다르게 경사도가 낮고 길이가 길기 때문이다. 약 2km. 초보에겐 길고 어느정도 실력이 있는 동호인들에겐 여러번 오르게 만드는 거리다. 이곳에서는 무리할 필요도, 그럴 장소도 없다. 꾸준히 케이던스 (Cadence)를 유지하며 오르면 되는것이다. 몇번의 블라인드 코너가 처음 오는 이들의 의욕을 꺾기 위해 이빨을 내밀고 있지만 이미 수없이 경험해본 나에게는 그저 그런 통과점일뿐이다. 이곳에서 필요한것은 우직함이다. 호흡은 이미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율운동을 시작했고 (다시 말해서 미친듯이 헐떡이고.) 크랭크는 이너에서 아우터로 올라올 생각을 못하고 있지만 현상태 그대로 마지막까지 이어나가기만 하면 되는것이다. 이것은 의외로 쉬워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첫 도전자들에게도 썩 해볼만한 것들임을 알수 있다.

그렇게 도착한 이기대의 정상은 쉴 가치가 있다. 이미 앞서 오른 라이더들이 벤치에 앉아 눈인사를 나누고 있는 일종의 자전거 공동체 영역속으로 나도 은근슬쩍 스며든다. 나무옆에 아리양을 세워두고 물 한모금을 입에 머금고보면 사실 그다지 쾌감이 느껴지진 않는다. 왜냐면 이미 오르는 과정속에서 그러한 화학적 반응을 겪고난 뒤기 때문이다. 단지 체력을 회복하고 무리가 갔을지 모를 다리를 풀어주는 것 외의 의미는 없다.

이기대는 어디에 가서 자랑할만큼의 난코스가 아니기에 이곳을 혼자 힘겹게 오르다보면 너무나 손쉽게 추월해 올라가는 다른 라이더들을 볼때가 많다. 친구녀석들도 매번 한마디씩 잊어먹지 않고 정기적으로 던져준다. 어렵지도 않는곳을 왜 계속 가느냐, 이제 그만 더 높은곳으로 가거라, 똑같은 곳은 지겹지도 않는가 하는 것이 주된 레퍼토리 이지만 실상 이만큼 내 개인적인 필요에 맞는 곳이 또 있는가 한다. 물론 이기대를 연속해서 3번, 4번이라도 오를수 있지만 (자신감과 체력 양쪽 측면에서) 수년째 라이딩을 즐기다보니 어딘가 나사 하나가 풀려버렸기에 만족하게 된다. 그것은 '프로를 쫒는, 남들을 이기기 위한 미친짓' 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사다. 나에겐 필요없는 그 나사가 빠지고나니 오히려 자전거를 더 즐기게 되는것이 재미있는 부분이다. 매일 왕복 30km의 거리를 3km가 채안되는 오르막과 함께 즐겁게 오르내리는 행위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오롯이 즐기게되는 도락(道樂)인것이다. 왜 난 저 사람만큼(또는 저 짐승만큼) 하지 못할까? 라는 고민은 봄날 벚꽃 질 무렵에 이미 길가에 던져버렸다.

잠깐 쉬었으니 올라온 만큼의 신명나는 다운힐을 달려본다. 누가 말했던가.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다고. 힐클라임의 명제가 아닐까? 오르막이 끈기와 체력의 싸움이었다면 내리막길은 제어력와 자제심의 싸움이다. 경사도가 있기 때문에 초반을 제외하곤 페달링으로 가속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넘쳐나는 속도를 50km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 이상은 주행라인을 벗어나 마주오는 차량이나 벽과의 불쾌한 강제접촉경험을 가져다 줄수 있다. 아웃-인-아웃을 유지하면서 자세를 린인시키거나 린위드 시키며 최대한 제어해 나가는 행위는 속도에 상관없이 정교한 조작이 선사하는 즐거움이 있다.



이때만큼은 한여름의 텃새가 한꺼풀 꺾여나간다. 무지막지한 속도의 결과로 경쾌하고도 시원한 바람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누벼대며 식혀주기 때문이다. 오르막에서의 성취감과는 괘를 달리하는 가속에서 얻어지는 이 해괴한 즐거움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결국 모두 다 달리게 하는 기저원인이 된다. 

자, 나는 오늘도 즐거움을 달렸다. 집으로 향할때의 쓸쓸함은 당신과 나의 착각일것이고 내일이 되면 또 다시 행복감으로 다가올것이 자명하니 너무 풀죽어 있지말자. 우리네 인생에 이정도 즐거움도 없다면 참으로 건조무미할것이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사막 모래만큼 바싹 말라버린 자신의 감성을 점검하여 개척해봐야 할것이 아닌가?



ps : 네. 이것은 그저 흥에 겨워 끄적거린 수필(筆) 입니다.